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인간과 대화하고, 스스로 학습하며, 예술을 창작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AI의 개념은 단순히 최근의 기술 혁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반부터 몇몇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이미 ‘사고하는 기계’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인공지능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시초를 말할 때 앨런 튜링(Alan Turing)을 떠올린다. 물론 튜링은 AI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했지만, 그 외에도 많은 천재들이 AI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그들은 여러 이유로 주목받지 못하거나, 시대적 한계 속에서 잊혀졌다. 이번 글에서는 20세기에 인공지능을 꿈꿨던 잊힌 철학자와 과학자들을 조명해본다.
사고하는 기계를 상상한 철학자: 루돌프 카르납
논리적 사고를 기계가 할 수 있을까?
20세기 초반, 논리학과 철학의 영역에서 인공지능 개념을 고민했던 학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루돌프 카르납(Rudolf Carnap)이다. 카르납은 ‘논리 실증주의’라는 철학적 입장을 통해, 모든 인간의 사고가 논리적으로 분석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기계도 논리를 따라 사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생각이 AI 개념에 미친 영향
그는 ‘의미론적 분석’과 ‘논리적 구조’를 이용해 인간의 사고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 했고, 이는 이후 컴퓨터 공학과 인공지능 연구에서 기호 논리학(Symbolic Logic)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그는 AI 연구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논리적 사고 체계는 현대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기반이 되었다.
최초의 뉴럴 네트워크 개념을 제안한 맥컬록과 피츠
뉴런을 본뜬 최초의 컴퓨팅 모델
1943년, 미국의 신경생리학자 워런 맥컬록(Warren McCulloch)과 수학자 월터 피츠(Walter Pitts)는 ‘맥컬록-피츠 뉴런(McCulloch-Pitts Neuron)’ 모델을 발표했다. 이 모델은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그들이 주장한 개념
뉴런은 단순한 논리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
뉴런들이 조합되면 더 복잡한 연산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면 기계가 인간의 사고 방식을 모방할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딥러닝(Deep Learning)과 뉴럴 네트워크의 원형이 된 개념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컴퓨터의 성능이 부족하여 이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없었다.
‘튜링보다 먼저’ 기계 학습을 주장한 로지 퍼스
기계는 학습할 수 있는가?
앨런 튜링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을 고민한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로지 퍼스(Ross Quillian Purse)로, 1930년대에 기계가 스스로 패턴을 학습하고, 정보를 조직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퍼스의 연구와 AI
퍼스는 ‘의미 네트워크(Semantic Network)’라는 개념을 정립했다. 이는 오늘날 자연어 처리(NLP)와 지식 그래프(Knowledge Graph) 기술의 기초가 된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후대에 들어서야 AI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시 평가받기 시작했다.
최초의 AI 프로그램을 만든 클로드 섀넌
정보 이론의 창시자, AI에도 관심을 갖다
컴퓨터 과학의 핵심 개념인 ‘정보 이론(Information Theory)’을 만든 사람으로 유명한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도 AI 개념에 기여했다. 1950년에 그는 기계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최초의 ‘AI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섀넌의 체스 프로그램
그가 만든 프로그램은 체스를 두는 기계였다. 이 기계는 간단한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체스의 수를 계산하고 최적의 수를 두려고 했다. 이는 오늘날 체스 AI, 바둑 AI(알파고)와 같은 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컴퓨터의 성능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섀넌의 연구는 실험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인공지능 철학을 탐구한 후버 드레이퍼
AI의 철학적 문제를 고민하다
20세기 후반, AI가 발전하면서 철학자들은 “기계가 진정한 사고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후버 드레이퍼(Hubert Dreyfus)는 이 질문에 깊이 몰입한 철학자였다.
그의 주장
AI는 인간과 같은 직관적 사고를 할 수 없다.
인간의 사고는 논리적 연산이 아니라 경험과 감각에 의해 형성된다.
따라서 AI가 인간처럼 사고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계산을 넘어선 ‘맥락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주장들은 현대 인공지능 연구에서 강한 AI(Strong AI)와 약한 AI(Weak AI) 개념을 구분하는 기초가 되었다.
앨런 튜링은 인공지능 개념을 대중적으로 알린 위대한 인물이다. 하지만 AI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한 사람들은 튜링뿐만이 아니었다. 루돌프 카르납, 맥컬록과 피츠, 로지 퍼스, 클로드 섀넌, 후버 드레이퍼—이들은 모두 AI의 기초를 만들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들이다.
그들의 연구는 오늘날의 AI 기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사용하는 챗봇, 이미지 인식, 음성 인식, 머신러닝 기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AI의 역사는 한 사람의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아닌, 여러 세대에 걸친 혁신적인 사고와 연구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제 AI가 인간의 삶을 더욱 변화시킬 미래를 기대하며, 그 시작을 만들어낸 잊혀진 천재들을 기억해야 한다.